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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한 그릇에 만원 넘는 시대... '면플레이션'에 무너진 서민 음식

2025.06.26. 오전 11:01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이정혁(가명·31)씨는 주말마다 자장면 한 그릇으로 소소한 행복을 찾곤 했다. 혼자 자취하는 그에게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시켜 먹는 자장면은 작은 위안이었다. 그러나 최근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이 8,000원을 넘어서면서 이런 소소한 즐거움마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면 요리는 더 이상 서민 음식이라 부르기 어려워졌다. 숙취 해소용으로 즐겨 먹던 짬뽕은 이미 1만원이 기본이 되었고, 여름철 별미인 냉면은 1만5,000~1만6,000원, 비 오는 날 생각나는 칼국수도 1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부담 없이 즐기던 면 요리가 이제는 '사치'가 되어가는 현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외식물가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1만원으로 점심 한 끼를 해결하기도 버거워졌다. 특히 면 요리의 가격 상승세는 다른 음식에 비해 더욱 가파르다. 한국소비자원의 외식물가 지표에 따르면, 서울시 자장면 평균 가격은 2015년 4,598원에서 올해 7,500원으로 10년 사이 무려 63.1%나 상승했다. 같은 기간 칼국수는 6,538원에서 9,539원으로 45.9%, 냉면은 8,179원에서 1만2,130원으로 48.3% 올랐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가격 상승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장면 가격은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12.9% 상승했지만, 2020년부터 2025년까지의 5년 동안에는 무려 44.3%나 치솟았다. 냉면 가격도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2015~2020년 사이 9.9% 상승했던 냉면 가격은 2020~2025년 사이 34.9%나 올랐다. 이는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김치찌개 백반 가격이 같은 기간 28.8% 상승한 것과 비교해도 훨씬 가파른 증가세다.

 


외식업계는 이러한 가격 인상의 원인으로 원재료비와 인건비 상승을 꼽는다. 밀가루, 식용유 등 기본 재료의 가격이 크게 올랐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도 커졌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제 곡물 가격 상승과 물류비 증가는 면 요리 가격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가격 인상이 외식업계의 어려움을 해결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면플레이션'으로 인해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외식 빈도를 줄이면, 결국 외식업계 전체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소비자들이 비싸진 면 요리 대신 집에서 직접 조리하거나 대체 식품을 찾는 경향이 늘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 교수는 "원재료 가격 인상이 외식 물가에 반영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가격이 계속 오르면 소비자들은 결국 지갑을 닫고 외식 빈도를 줄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외식업계에도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악순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제 자장면 한 그릇, 냉면 한 그릇은 더 이상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서민 음식이 아니게 되었다. 원재료비와 인건비 상승이라는 현실적 문제와 소비자의 부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외식업계와 소비자 모두에게 달갑지 않은 '면플레이션'을 해소할 방안은 아직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이정혁씨와 같은 많은 직장인들의 소소한 즐거움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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